최근 일어난 전쟁을 뉴스로 보면서 계속 마음 한쪽이 무거웠습니다.
누가 먼저 공격했는지,누가 더 강하게 대응했는지, 어느 쪽의 명분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는지 같은 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화면 위를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 마음에 오래 남는 것은 그런 설명들이 아니었습니다. 무너진 건물보다 그 앞에 멈춰 선 사람의 표정이었고, 피해 규모라는 말보다 그 숫자 안에 있었을 한 사람의 저녁과 내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전쟁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려고 쓰는 글이 아닙니다. 누가 더 옳은지, 어느 편에 더 가까운지 정리하려는 글도 아닙니다. 이번 전쟁을 보면서 제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감각, 그리고 인간적으로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한다고 느낀 생각을 한 번 정리해보고 싶어서 쓰는 글입니다.
전쟁은 늘 큰 말로 설명됩니다.
안보, 전략, 국익, 억지력, 보복.
그 말들은 너무 단단해서 마치 상황을 잘 이해하게 해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말들만 따라가고 있으면 어느 순간 우리는 전쟁을 사람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 편과 남의 편을 가르는 일로 먼저 보게 됩니다. 누가 더 정당한지, 누가 더 먼저 잘못했는지, 누가 더 세게 응징해야 하는지 같은 말이 사람의 얼굴보다 먼저 앞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전쟁은 결국 국가라는 추상적인 존재가 겪는 일이 아니라 이름이 있는 사람이 겪는 일입니다. 누군가의 가족이 사라지고, 누군가의 집이 무너지고, 누군가가 평생 지워지지 않을 장면을 마음속에 안고 살아가게 되는 일입니다.
3월 초에는 이란 남부 미나브의 여학생 학교가 공격받아 160명이 넘는 아이들이 숨졌다는 보도가 있었으며, 4월 6일에는 이스라엘 하이파의 한 주거용 건물이 이란 미사일에 맞아 붕괴된 잔해 아래에서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이런 장면 앞에서는 전쟁을 더 이상 국가와 국가의 충돌이라는 말로만 볼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은 결국 학교가 무너지고, 집이 무너지고, 한 가족의 하루가 통째로 끊어지는 일이라는 사실이 너무 선명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전쟁을 볼 때마다 누가 이기고 지는지보다 먼저 도대체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의 삶에 무감각하게 만드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전쟁이 가장 무서운 이유는 사람을 죽이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늘 상대를 바꾸어 부르기 시작합니다.
위협, 표적, 정리 대상, 불가피한 희생.
그 순간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처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뀝니다. 바로 거기서 비극은 시작됩니다.
상대의 얼굴이 지워지면 폭력은 훨씬 쉬워집니다. 이름이 사라지고 범주만 남으면 죄책감도 빠르게 줄어듭니다. 원래는 차마 할 수 없었던 일도 관리와 대응, 필요라는 말로 포장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전쟁이 무서운 것은 단지 총과 미사일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사람을 사람으로 느끼게 만드는 감각을 조금씩 마비시키기 때문입니다.
잔혹함은 늘 특별한 괴물의 얼굴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도 공포와 분노, 복수심과 선전, 반복된 침묵 속에서 잔혹함에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가장 무서운 교훈은 바로 그 지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기 시작할 때, 비극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당연한 일이 됩니다.
전쟁 뉴스에는 늘 숫자가 붙습니다.
사망자 수, 피란민 수, 피해 규모, 공습 횟수.
그 숫자들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의 크기를 알기 위해서는 정확한 집계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숫자는 고통을 설명할 수 있어도 고통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AP는 4월 20일 기준 이란 쪽 전쟁 사망자가 최소 3,375명이고, 그 가운데 383명이 18세 이하라고 전했습니다. 다만 이 수치는 민간인과 보안 인력을 따로 구분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저는 이런 숫자를 볼 때마다 그 규모에 압도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런 숫자가 너무 커질수록 우리가 오히려 그 안의 한 사람을 잘 떠올리지 못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사망자 3,375명이라는 말 뒤에는
3,375개의 이름이 있고,
3,375개의 가족이 있고,
3,375개의 내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은 너무 쉽게 그 모든 것을 한 줄의 속보와 숫자로 바꾸어버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숫자를 점점 더 빨리 소비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가슴이 철렁하던 뉴스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그냥 또 하나의 상황 정리처럼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의 감각은 가장 조용하게 닳아갑니다.
그래서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숫자 뒤의 숨어 있는 한명의 사람입니다. 남겨진 신발 한 켤레, 아이의 책가방 하나, 무너진 집 앞에 멈춰 선 가족의 표정 한 장면이 거대한 통계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전쟁을 보며 분노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오히려 분노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분노가 오래될 지속 될 때입니다.
계속되는 폭력과 죽음을 보다 보면 사람은 쉽게 지칩니다. 그리고 지친 감정은 자주 두 방향으로 기웁니다.
하나는 체념이고, 다른 하나는 증오입니다.
체념은 세상은 원래 이런 곳이라고 말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증오는 저 사람들은 원래 저렇다고 말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끝까지 붙들어야 할 태도는 그 둘이 아닙니다. 냉소하지 않되, 증오로 닮아가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어렵고, 그래서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진짜 경계해야 할 것은 잔혹함 그 자체보다 잔혹함에 익숙해지는 감각입니다. 처음엔 충격을 받다가도 반복해서 접하면 무뎌지고, 무뎌지면 쉽게 지나치고, 지나치기 시작하면 타인의 고통이 더 이상 우리 안에 질문을 남기지 않게 됩니다. 그 순간 인간성은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마모되어 닳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은 거대한 사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부수는 것은 아주 평범한 것들입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 가족과 먹는 저녁, 학교에 가는 아이, 내일의 약속을 잡는 마음, 오늘 하루는 무사히 끝날 것이라고 믿는 감각.
우리는 이런 것들을 너무 쉽게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전쟁은 바로 그 당연함이 얼마나 귀한것인지를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평화는 거창한 구호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 평화는 폭발 소리 없이 잠드는 밤이고, 군복보다 가족의 얼굴을 더 자주 보는 하루이며, 내일이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입니다. 이 단순한 상태가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는 자주 잊고 삽니다.
그래서 평화는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하루를 살아낼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현실적인 조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세상은 자꾸 우리에게 입장을 요구합니다. 어느 편인지, 누구를 더 비난하는지, 어떤 프레임으로 볼 것인지 계속 선택하게 만듭니다. 물론 판단은 필요합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디에 과잉 폭력이 있었는지, 어떤 거짓말이 반복되는지는 분명히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더 먼저 붙들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고통을 고통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입니다.
그 감각이 사라지면 전쟁은 끝없이 반복되는 통계가 되고, 폭력은 그저 해석의 차이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인간다움은 거대한 정의를 말하는 일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못 본 척하지 않는 데서 먼저 드러납니다.
내 편의 눈물만 눈물로 보지 않는 것,
멀리 있는 사람의 절망도 인간의 절망으로 받아들이는 것,
뉴스를 소비하듯 비극을 지나치지 않는 것.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정답처럼 단단한 입장이 아니라, 타인의 얼굴을 끝까지 인간의 얼굴로 볼 수 있는 시선입니다.
이번 전쟁을 보며 제가 가장 오래 붙들고 싶었던 생각은 이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기 시작할 때 비극은 시작되고, 그 비극에 무뎌질 때 더 큰 비극이 완성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정치적 입장과 ,경제적 손익이 아닙니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무뎌지지 않는 마음,
분노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 태도,
숫자 뒤의 한 사람을 끝까지 보려는 시선입니다.
전쟁은 멀리서 벌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성을 잃는 방식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평화도 거창한 곳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결국 평화는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아픔을 못 본 척하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전쟁으로 돌아가신 모든 분들을 깊이 추모하며, 남겨진 이들의 아픔에도 조용한 위로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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